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겨울의 원근법/이장욱2019-07-26 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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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02:46 | HIT : 4,596 | VOTE : 412



[시로 여는 세상]

 

 

겨울의 원근법

 

 

이장욱

 

너는 누구일까?
가까워서 안 보여.

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
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네.
바위를 부수는 계란과 같이
사자를 뒤쫓는 사슴과 같이

근육질의 눈송이들
허공은 꿈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네.
너는 너무 가까워서
너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

드디어 최초의 눈송이가 된다는 것
점 점 점 떨어질수록
유일한 핵심에 가까워진다는 것
우리의 머리 위에 소리 없이 내린다는 것

나는 너의 얼굴을 토막토막 기억해.
네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스쳐갔을 때
혀를 삼킨 입과 외로운 코를 보았지.
하지만 눈과 귀는 사라졌다.
구두는 태웠던가?

너는 사슴의 뿔과 같이 질주했네.
계란의 속도로 부서졌네.
뜨거운 이야기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가까운 눈송이와 먼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
나는 겨울의 원근이 사라진 곳에서 너를 생각해.
이제는 아무런 핵심을 가지지 않은
사슴의 뿔이 무섭게 자라나는
이 완전한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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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하늘,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발을 보았는가. 이 시속에도 계절의 극치인 그런 눈발이 내린다. 이 시는 지난 추억의 밑그림만을 단순히 그려주지는 않는다. 이 시속에서 시인의 독보적인 화법과 예민한 사고와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다보면,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겹쳐지는 판타지적인 중첩된 그림 한 폭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시에서 우리는 ‘근육질의 눈송이들’을 경험하고 ‘사슴의 뿔’처럼 자라나는 삶의 편린들이 순차적으로 융합되는 쉬르리얼리즘의 상상의 세계에 함께 동참하게 되리라.

  이장욱 시인은 서울 출생. 고려대 노문과및 대학원 졸업. 1994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이 있고, 평론집으로 <혁명과 모더니즘><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 이장욱의 현대시 읽기>가 있으며,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 있다. 문학수첩작가상, 현대시학작품상등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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