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팽나무가 쓰러,지셨다/이재무2019-07-23 04: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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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13:20 | HIT : 4,231 | VOTE : 426


[시로 여는 세상]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케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들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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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팽나무는 마을의 가장 큰 나무이면서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다. 인간과 더불어 산 이 팽나무는 마을의 가장 큰 웃어른이시며 모두에게 마음의 큰 그늘을 드리워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을의 추억을 함께 했으니 그 팽나무의 쓰러짐이란, 오죽 안타까움과 서운함이었겠는가. 오늘날은 자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결여, 그리고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큰마음을 외면한 채 마구잡이로 생태 환경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 인간의 삶과 같이 하며 큰 품을 열어 그늘을 내려놓던 팽나무! 그렇다. 자연과 물아일체로써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하여 큰 각성으로 되돌아보도록 해야 하리라.

  이재무 시인은 충남 부여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섯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이 있으며, 산문집 <생의 변방에서> 등이 있다.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윤동주시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서 강의.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9년 8월 10일(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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