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흰 국숫발/장철문2019-07-19 19:49:59
작성자

2008·10·02 23:03 | HIT : 4,496 | VOTE : 359



[시로 여는 세상]



흰 국숫발


장철문


슬레트 지붕에 국숫발 뽑는 소리가
동촌 할매
자박자박 밤마실
누에 주둥이같이 뽑아내는 아닌밤 사설 같더니


배는 출출한데 저 햇국수를 언제 얻어먹나
뒷골 큰골 약수터에서 달아내린 수돗물
콸콸 쏟아지는 소리
양은솥에 물 끓는 소리


흰 국숫발, 국숫발이
춤추는
 

저 국숫발을 퍼지기 전에 건져야 할 텐데
재바른 손에 국수 빠는 소리
소쿠리에 척척 국수사리 감기는 소리


서리서리 저 많은 국수를 누가 다 먹나
쿵쿵 이 방 저 방
빈 방
문 여닫히는 소리
아래채에서 오는 신발 끌리는 소리
헛기침 소리


재바르게 이 그릇 저 그릇 국수사리 던져넣는 소리
쨍그랑 떵그렁 부엌바닥에 양재기 구르는 소리
솰솰솰솰
멸치국물 우려 애호박 채친 국물 붓는 소리


후르룩 푸루룩
아닌 밤 국수 먹는 소리


수루룩 수루룩
대밭에 국숫발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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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국수 한 그릇이다. '멸치국물 우려 애호박 채친 국물'이라니. 저절로 침이 고인다. 옛날 국수가게에서 빨래처럼 널려 햇살에 잘 마르던 눈부신 국수, 추운 가난을 녹여주던 그 국수 아닌가. 이 시는 겨울 밤 눈 내리는 소리를 흰 국수 뽑는 소리로 생생하게 비유한다. 수루룩 수루룩, 밤 국수 한 사발에 세상 얼음이 다 녹으리라.

장철문 시인은 전북 장수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하여 시집 <바람의 서쪽><산벚나무의 저녁><무릎 위의 자작나무>등이 있다.
                            
  
<신지혜. 시인>www.goodpoem.net



-[뉴욕일보].2008년 9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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