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기차와 사내-1950년대/송상욱2019-07-19 21: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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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7 00:57 | HIT : 4,445 | VOTE : 380

[시로 여는 세상]



기차와 사내
 
-1950년대



송상욱 
 

 

기차는 악기 부서지는 소리로 간다
선로 위에 부서져 내리는 소리를 씻으며 간다
간이역마다 제 몸의, 소리의 핏줄 같은
아기울음소리 나는 마을로 기차는
해와 달을 싣고 간다
선로 변에 들려오는 아기울음소리는 처음은
짐승스런 소리였다가 커서는 남루한 소리로 운다
사내는 기차를 탄다
아버지 같은 기차를 탄다
칸칸이 내다보이는 세멘블럭 너머
허기져 널린 빨래들을 보며
'가난은 죄가 아니다'는 말을 되뇌이지만
가난은 열차의 무게만큼이나 슬픈 기적소리에 젖는다
사내는 종착역에 내려
눈 코 귀에 와장짱 낮선 세상이 처박히는
역 광장 한 모퉁이에서
이름이 말소 된 채,
어둠에 저린 빈 손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로등 밑에서 제 모습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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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시대가 있었다. 6.25 전쟁의 그 처참한 폐허더미 속에서 목숨의 연명과 고된 가난에 몸부림치며 처절히 싸웠던 세대들, 그들에 의해 바로 오늘날 한 민족과 개인의 풍요한 삶이 영위되는 것, 한 사내의 춥고 배고팠던 그 시절의 흑백영화 한 장면 속으로 처연하게 빨려 들어가 보라. 그 안쪽에 바로 우리 부모와 형제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아버지 같은 기차'에 몸을 싣고 종착역에 이르러‘이름이 말소 된 채’‘가로등 밑에서 제 모습을 잃는', 뼈아픈 한 사람을.

   송상욱 시인은 고흥 출생. 1975년 시집『망각의 바람』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망각의 바람><영혼 속의 새><승천하는 죄><하늘 뒤의 사람들>이 있으며, 계간『송상욱 시지』(현 26호)를 발행하고 있다. 현대시인상 본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8년 1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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