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간 자의 그림자/김충규2019-07-19 19: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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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24 02:39 | HIT : 4,377 | VOTE : 381

[시로 여는 세상]


간 자의 그림자 



김충규

 



가진 것 없으니 어둠이 근친이다 술이 핏줄이다 그렇게 살다간 큰형님은,
오십 중반도 못 넘기고 저승 갔다
간 자가 서럽나 간 자를 보내고 남은 자가 서럽나


모르겠다 ;


태양이 몰핀같이,
낮 동안 통증을 잊고 지내라 다그치고
나는 아우로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둠이 어둠과 섞여 더 질척해지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도 가진 것 없어 먼저 갈지도 모른다


궁금하지 않다 ;


다만, 누가 더 서럽나 간 자? 남은 자?
숨결에 불순물이 섞여서 수시로 기침이 터져 나오는 밤,
내 창밖에 서성거리는 저것이 간 자의 그림자라는 생각,
그림자 홀로 간 자가 죽기 전 걸어 다녔던 길들을 서성거리고 있다는 생각,

때론 눈알에 핏줄이 몰릴 때가 있는데
너무나도 선명하게 간 자와 함께 했던 어느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때,

서럽다고도 안 서럽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간 자를 내가 더 빨리 가라고 등 떠민 게 아닌데
내 등이 후끈 차가워지는 순간이다,
누가 내 등을 떠미는 듯,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땡끌땡글한 저승의 어둠 속으로,
 

붉은 눈알로 창밖을 바라보면 거기 간 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
아닌 듯 땅바닥에 드러눕는 것을 보기도 한다
내 그림자를 내 주고 그 그림자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왠지 내가 이승을 아무 미련 없이 견뎌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간 자가 남기고 간 그림자가 아닌가,
멍해지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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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이 시에 공감해 보라. 이 보이는 물질계에서 마야의 환영처럼 잠시 잠깐 상을 맺다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지는 허무한 것. 생명과 죽음이 번복되는 이 물질 우주의 순환과 시공 속에서 찰나의 존재로 우리는 이 별을 다녀가지 않는가. 간 자의 그림자를 껴안고 서러운 고통을 감내하며 이승의 삶을 견딜 수밖에 없는 우리들. 이 시가 오랫동안 뇌릿속에 박힌다.

  김충규 시인은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으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물 위에 찍힌 발자국>등이 있다.
 

<신지혜.시인>

www.goodpoem.net

[뉴욕일보]2008년 10월 20일(월요일)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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