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1 13:20 | HIT : 5,406 | VOTE : 750
[시로 여는 세상] 아버지의 등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 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 년이나 지난 어느날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내 서러운 등짝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청이불을 덮어주고 가는 딸년 땜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 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 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서러운 등짝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다 ---------------- 이 시가 가슴 뭉클하다. 그렇다. 이 세상 아버지들은 그렇게 둥지와 일가족을 위해 등짐을 짊어졌던 것을, 그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아버지의 고독한 등인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검은 등짝! 이 지상의 아버지는 그 등으로 얼마나 구불구불한 난장의 골목을 누비며 고단한 양식을 날랐던 것인가. 우리 또한 둥지와 쉼터를 만들며 그 아버지의 등처럼 또 그렇게 등을 보여주며 이곳을 따라 건너가고 있음을. 정철훈시인은 전남 광주 출생. 1997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국민대 경제학과 졸업. 러시아 외무성 외교과학원에서 역사학 박사 수료. 시집으로 <살고 싶은 아침>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개 같은 신념>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있으며,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 <카인의 정원> <소설 김알렉산드라> 수필집및 전기<뒤집어져야 문학이다> <소련은 살아 있다> <김알렉산드라 평전><옐찐과 21세기 러시아>등의 저서가 있다. 신지혜<시인> [뉴욕일보]2010년 5월 3일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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