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10·27 23:59 | HIT : 4,254 | VOTE : 478
『뉴욕일보』 [시로 여는 세상] 관계
구석본 우리가 풀잎을 만지면 풀잎을 만지면 새 바람과 이어져 그 여리디여린 숨결로 허공을 흔들지요 나뭇가지의 끝을 아스라하게 바라보는 순간, 새 한 마리,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공중으로 사라지지요 풀잎과 나뭇가지의 끝을 스스로를 지워 허공을 만들고 새 한 마리 날리는 것이지요 이쪽의 나와 저쪽의 그대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바람결, 잠시 동안 그대를 지우고 나를 지워, 우리의 추억을 만들지요 추억 속에서 그대는 그대의 유골을 찾아 떠나고 나는 나의 자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다시 한 세상 저물녘이면 그대는 나의 어둠 속으로, 나는 그대의 어둠 속으로 지우고 지워져 지울 수 없는 하늘 같은 허공으로 만나지요 ---------------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 관계, 그리고 우리 앞의 모든 세계가 서로서로 관계에 의해 이루어져 있음을 일깨워주며 우리에게 큰 감화를 준다. 존재와 존재사이 서로 이어져 맞물려 돌아가는 관계, 그리하여 무수한 존재들이 서로 스며드는 경지(境地), 마침내 '그대는 그대의 유골을 찾아 떠나고/나는 나의 자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만'이라 한다. 그리하여 저 무구한 근원적인 '지울 수 없는 하늘 같은 허공'이 된다니! 그 얼마나 깊고 또 넓은 허공이겠는가. 구석본 시인은 경북 칠곡 출생.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197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지상의 그리운 섬><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쓸쓸함에 관해서>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구교육대 겸임교수.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9년 10월 26일자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