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9 13:27 | HIT : 4,240 | VOTE : 365
[시로 여는 세상] 무넘기로 물 넘어가는
오정국 빗줄기가 두드리는 못물에서 호곡하듯 일어서는 물방울, 쫑긋쫑긋 입을 벌려 빗방울을 받아먹는데 물밑에서 잠을 깨는 어두운 목소리들, 진흙바닥을 어슬렁거리다가 끓어오른다 후덥지근한 진흙의 숨을 타고 올라와, 못물이 일시에 술렁거린다 수면의 안팎에서 들숨 날숨으로 주고받는 말소리들, 어린애가 젖 달라고 보채는 소리, 머리 빗는 처녀애의 넋두리 같은 그 소리, 내 거기서 말 몇 마디 업어와 이런 詩의 진흙반죽에 밀어 넣는데 이럭하고도 남아도는 못물의 일렁거림, 못은 제 아이의 등을 때려 밥 먹이는 어미처럼 펑퍼짐한 엉덩이를 자꾸 들썩거려, 밀고 당기고 굽이지는 물결들, 그 가락이 휘어지고 쓰러지고 회오리치듯 무넘기로 물 넘어가는 초여름 저녁
--------------- 이 시가 생동감으로 꿈틀거린다. 빗줄기를 맞는 못물의 생생한 장단, 가락, 물의 술렁거림, 이것은 그저 조용한 靜적인 못물이 아니다. 물결이 '밀고 당기고 굽이지는' 경쾌한 한 판 승부다. 바로 눈앞에서 비가 쏟아지는 연못 풍경 속에 동참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천지간 자연물이 마주쳐 빚어내는 연주이며 삶의 냄새 물씬 풍기는 한 판 굿판이다. 오정국 시인은 경북 영양 출생.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학과와 同 대학원 졸업. 1988년『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모래무덤><내가 밀어낸 물결><멀리서 오는 것들>이 있으며, 평론집으로<시의 탄생, 설화의 재생><비극적 서사의 서정적 풍경>이 있다.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역임. 현재 한서대 인문사회학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2009년 8월 17일(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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