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

제목[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밥 먹자/하종오.2019-07-23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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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5 08:53 | HIT : 4,184 | VOTE : 412



뉴욕일보』

 

[시로 여는 세상] 

 

밥 먹자


 

 

하종오

 

밥 먹자
이 방에 대고 저 방에 대고
아내가 소리치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

밥 먹자
어머니도 그랬다
밥 먹자, 모든 하루는 끝났지만
밥 먹자, 모든 하루가 시작되었다
밥상에 올릴 배추 무 고추 정구지
남새밭에서 온종일 앉은 걸음으로 풀 매고 들어와서
마당에 대고 뒤란에 대고
저녁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닭들이 횃대로 올라가고
감나무가 그늘을 끌어들였고
아침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볕이 처마 아래로 들어오고
연기가 굴뚝을 떠났다
숟가락질하다가 이따금 곁눈질하면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어머니가 되어 있는 아내를
비로소 보게 되는 시간

아들 딸이 밥투정을 하고
내가 반찬투정을 해도
아내는 말없이 매매 씹어먹으니
애늙은 남편이 어린 자식이 되고
어린 자식이 애늙은 남편이 되도록
집 안으로 어스름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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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가 따스하고 푸근하다. 어머니에서 아내로 이어진 밥 먹자 라는 말, 밥을 먹는 정겨운 풍경이 와락 품에 와 안긴다. 밥 먹기 위해서, 밥을 벌기 위해서, 밥을 나누고, 일가를 이루고, 정을 데워내는 일련의 행위들 그 모든 중심엔 언제나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하고 눈물겨운 밥, 목숨의 대 장정과 뗄 수 없는 생존의 밥이 있다. 이 밥이야말로 엉키고 설킨 세상의 모든 역사의 혼돈과 소음, 시비와 쟁론을 일시에 무화시킨다. 그렇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찡해지는 삶의 노래같은 말, 밥 먹자!

 하종오 시인은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쥐똥나무 울타리><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사물의 운명><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정><깨끗한 그리움><님시편(詩篇)>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받음.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9년 9월 14일자(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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