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8 00:41 | HIT : 4,152 | VOTE : 424
[뉴욕일보] [시로 여는 세상] 빙빙
윤석산 집에서 잘못을 하고는 밖으로 도망 나와 동네 어귀를 빙빙거리며 돌아다닌다. 집에 들어가면 야단맞을 것이 뻔하니. 저녁이 되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 기가 올라와도, 어둑어둑 산 그림자를 타고 어둠이 내 려와도, 나를 찾는 소리는 없다. '석산아 얼른 들어와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들어갈 텐데.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아 이들이 나와 놀면서, 너 야단맞을까봐 못 들어가지. 그 래도 어머니는 아직도 부르지 않으신다. 이제 내 나이 예순 하고도 두서너 살. '석산아 얼른 들어와 밥 먹어라.' 아직도 나는 빙빙, 어머니 부르는 소리가 기다려진다.
------------------------- 우리도 어린 시절, 야단맞은 채 저녁을 배회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 그 막막함, 아릿하며 애잔한 한 장면 속에 아직도 아픈 얼룩처럼 혼자 우두커니 남아 어머니가 불러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화면이 고스란히 정지되어 있다. 시간의 영속성은 고정되어 있는 법이 없으나 이 장면은 변함없이 시간 속에 부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결국, 아직 집 나온 아이처럼 이 세상의 부조리한 고정된 화면 속에서 세파에 끈임없이 흔들리며 '어머니 부르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임을 갈파한다. 그리하여 저 어머니 근원에 회귀와 회향을 염원하며 아직도 머물러있음을, 이 시가 잔잔한 울림으로 스며들고 있다. 윤석산(尹錫山)시인은 서울 출생. 1967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및 1974년『경향신문』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밥 나이, 잠 나이>이 있으며,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시로 여는 세상>2009년 10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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