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3 08:55 | HIT : 4,305 | VOTE : 360
[시로 여는 세상]
허공
고은
누구 때려죽이고 싶거든 때려죽여 살점 뜯어먹고 싶거든 그 징그러운 미움 다하여 한자락 구름이다가 자취없어진 거기 허공 하나 둘 보게 어느날 죽은 아기로 호젓하거든 또 어느날 남의 잔치에서 돌아오는 길 괜히 서럽거든 보게 뒤란에 가 소리 죽여 울던 어린시절의 누나 내내 그립거든 보게 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 지나왔거든 보게 찬물 한모금 마시고 나서 보게 그대 오늘 막장떨이 장사 엔간히 손해보았거든 보게 백년 미만 도(道) 따위 통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게 거기 그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보냐 ----------------------------
허공이 곧 해법이다. 삶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는 자여, 삶의 저잣거리에서 오늘 싸우고 울고 부대끼는 것들, 치열한 사투나 피맺힌 마음 고생이나, 다투고 아우성쳐도 저 허공안에 모두 다 풀어놓아라.'거기 그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보냐' 일체가 저 허공에서 일어났다 허공으로 소멸하는 것 아니랴.
고은 시인은 전북 군산 출생. 1952년부터 10여년 동안 승려 생활. 1958년『현대시』추천으로 문단 데뷔. 시집으로<피안감성><해변의 운문집><문의 마을에 가서><조국의 별><만인보><백두산><허공>등 다수 시집 및 소설집,산문집,번역집. 한국문학상,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불교문학상, 노르웨이본슨문학훈장,사카다 문학상,스웨덴문학상,영랑문학상,유심상,그리핀 트러스트문학상 평생공로상 및 다수 수상.
<신지혜.시인>
/www.goodpoem.net
[뉴욕일보] 2009년 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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