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11 22:47 | HIT : 4,282 | VOTE : 352
[시로 여는 세상]
우리가 할 일은 웃는 것이다
이승훈
웅성거리는 삶 헤매고 떠도는 삶 술에 취해 주정도 하고 실수도 하는 삶이 세계입니다 고상한 영혼 따윈 없죠 형이상학도 없습니다 모두가 언어죠 후회도 언어 기쁨도 언어 모래도 언어 지금 저리는 팔도 언어 어제 들린 카페도 언어 당신도 언어입니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고 당신의 한계죠 당신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눈을 볼 수 없고 당신은 지금 추운 들판, 거리, 마른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시야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시야가 세계이고 세계의 한계죠 결국 사유는 ^^ 짓이죠 무슨 영혼, 진리, 본질 따윈 버리세요 잊으세요 망각하세요 세계와 거리를 두지 마세요 그저 사세요 영혼 따위에 속지 마세요 진리를 찾지 마세요 삶이 그대로 진리입니다 당신의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진리죠 오전엔 눈이 오고 오후엔 해가 납니다
---------- 우리는 모든 것에 경직되어 있다. 도그마에 경직되고, 각본된 교육에 경직되고, 세뇌된 문화양식과 과대한 교양들의 사유와 논리에 경직되어 있다. '당신의 시야가 세계이고 세계의 한계죠" "그저 사세요" 이 구절들처럼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 말 또한 없으리라. 삶의 마찰에서 빚어지는 온갖 스트레스를 해체시키고, 삶을 있는 그대로 여과없이 통과시키며 인간을 따스하게 후원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라 한다. 인간을 피곤하게 하고 얼룩진 모든 것으로 부터 벗어나 오직 바로 지금, 당신의 날것 그대로의 느낌, 생명 그대로의 시각, 삶의 굴레도 억압도 없음을 이 시에서 느껴보라. 우리가 할 일은 웃는 것이다. 당신의 '삶이 그대로 진리'이고, 바로 당신이 진리라 하지 않는가.
이승훈 시인은 강원 춘천 출생. 한양대 국문과 및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63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물A> <환상의 다리><너라는 햇빛><이것은 시가 아니다>및 다수 시집과 시론집, 산문집 다수가 있다.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이상시문학상등을 수상했다. 현 한양대 국문과 교수. <신지혜.시인>www.goodpoem.net
[뉴욕일보]2008년 9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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