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03 15:34 | HIT : 4,292 | VOTE : 416 -2008.1월 29일자- ------------------------------------------------ 『시로 여는 세상』 눈물 -알19 정진규(1939~) 소설가 이청준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나긋나긋하고 맛있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슬픈 이야기인데, 그의 입술에는 끝까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깊이 내 가슴을 적셨던 아흔 살 어머니의 그의 어머니의 기억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요즈음 말로 하자면 알치 하이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난 설날 고향으로 찾아뵈었더니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집엔 빈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요 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책을 나무라 하고 이불을 멍서기라하는가 하면, 강아지를 송아지라고, 큰며느님더러는 아주머니 아주머니라고 부르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주로 사물들의 이름에서 그만 한없이 자유로워져 있으셨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사물들의 이름과 이름 사이에서는 아직 빈틈 같은 것이 행간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었는데, 다시 살펴보니 이를테면 배가 고프다든지 춥다든지 졸립든지 목이 마르다든지 가렵다든지 뜨겁다든지 쓰다든지 그런 몸의 말들은 아주 정확하게 쓰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몸이 필요로 하는 말들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몸에는 몸으로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어떤 빈틈도 행간도 없는 완벽한 감옥이 있더라는 것이었는데, 그건 우리의 몸이 빚어내는 눈물처럼 완벽한 것이어서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그리곤 꼬박꼬박 조으시다가 아랫목에 조그맣게 웅크려 잠드신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子宮 속 태아의 모습이셨더라는 것이었는데 ******************** 여기, 뜨거운 눈물의 시다. 인생의 궤적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된다. 몸에 관한 기억은 사람이 몸을 입기 시작한때부터 각인된 것이었다 한다.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모두 다 비우고 지워버려도 남는 몸의 생래적 원형과 기틀. 이 세상 살아가며 고귀한 정신을 담고, 한때 절절한 사랑과 이별을 가득 담았을 따뜻한 생을 그려보며, 눈물의 깊이로 오래 숙연해진다.
정진규 시인은 경기 안성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알詩><도둑이 다녀가셨다>[본색][껍질]등 다수.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