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27 23:19 | HIT : 5,324 | VOTE : 744
[시로 여는 세상]
나는 풀 밑에 아득히 엎드려 잎에 잎맞춘다 ㅡ 산늪4 신대철 늪에서는 물기 없이 젖어드는 눈, 살기 도는 몸기운도 부드러워진다. 내려갈 땐 어디든 돌아서 갈까, 숨 막던 산길 한 허리씩 풀며 돌과 나무 속에 들어가본 적 없는 이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내리막에는 굽은 허릴 조금 세워볼까. 오, 하느님. 분지 품은 능선에는 봉긋봉긋 날아다니는 꽃봉오리 천지, 멍게 열매 두드리다 언 눈 녹는 소리 퍼트리는 동고비꽃, 어둑한 숲속 나무 사이를 뒤져 마을길 찾아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곤줄박이꽃, 빈 움막 버려진 혼을 눈 깊이 간직하는 오목눈이꽃, 바람에 가늘게 울리는 연둣빛 향기, 아른거리는 구겨진 잡풀 하나 돌 틈에 속잎 트고, 바스락거리는 몸 속에 도는 흙내, 나는 풀 밑에 아득히 엎드려 잎에 잎맞춘다, 잎, 잎, 향긋, -------------------- 이 아름다운 시속 능선위에 서보라. 마음속의 오래 묵은 오점이나 어둠들이 씻겨져 그대로 자연과 순하게 녹아버리는 풍경이 여기 펼쳐진다. 자연만물이 순환하며 꽃을 틔워내고 그 작은 생명들이 움터 올라 제각기 향내로 가득한 탄복의 능선 아닌가. 어김없이 생명들이 또 소리 없이 왔다 가는 이 지상의 능선, 여기서 온갖 생물들이 통점을 지닌 채 서로서로 끈적이며 생의 향내로 어우러지는 이 풍광 앞에선 그저 경이로움과 겸허를 일깨운다. 마침내 자연과 물아일체의 경지인 ‘잎, 잎, 향긋’ 신대철 시인은 충남 홍성 출생. 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 국문과졸업. 1968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무인도를 위하여》《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바이칼 키스》등이 있으며, 백석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지훈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국민대 교수로 재직중. 신지혜<시인> 『뉴욕일보』2010년 4월 5일(월요일)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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