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8 11:10 | HIT : 4,228 | VOTE : 382
[시로 여는 세상]
흰 밥
김용택
해는 높고 하늘이 푸르른 날 소와 쟁기와 사람이 논을 고르고 사람들이 맨발로 논에 들어가 하루종일 모를 낸다 왼손에 쥐어진 파란 못잎을 보았느냐 캄캄한 흙 속에 들어갔다 나온 아름다운 오른손을 보았느냐 그 모들이 바람을 타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파랗게 몸을 굽히며 오래오래 자라더니 흰 쌀이 되어 우리 발 아래 쏟아져 길을 비추고 흰 밥이 되어 우리 어둔 눈이 열린다 흰 밥이 어둔 입으로 들어갈 때 생각하라 사람이 이 땅에 할 짓이 무엇이더냐
............................................................................... 밥이라는 단어처럼 따스한 말이 또 있는가. 정직한 땅위에 모를 심고, 벼를 타작하는 일은 신성한 것. 산 목숨의 양식을 일궈주는 거짓없는 저 대지의 은혜로 우리가 생명을 부지하는 일, 저녁 밥상 한 수저 위에 놓인 흰 밥에 감사하고 농부의 경건한 땀방울에 감사하고 무한 대지의 마음에 깊이 절해야 할 일이다. 하물며 '사람이 이 땅에 할 짓이 무엇이더냐' 이 시가 죽비를 내려친다. 어둠을 비추는 흰 쌀밥을 들이며,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이냐. 사람아!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군 출생. 1982년 [21인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으로 <섬진강><맑은 날><연애시집><그리운 꽃편지><사랑> 등 다수의 시집, 산문집<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등, 동시집 <콩, 너 죽었다>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김소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www.goodpoem.net
[뉴욕일보]2008년 7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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