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9 07:21 | HIT : 4,299 | VOTE : 355
[시로 여는 세상]
오누이
김사인
57번 버스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탔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 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쳐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 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 어린 오누이가 서로 기대고 가는 인정스런 모습이다.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일 지라도 고것들 서로 먼저 자리 내주고 의지하며 토닥일 수 있는 살가운 정이 눈에 밟히지 않는가. 어린 천사들 놓아두고 먼저 간 이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화자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이 또랑또랑한 맑은 눈망울을 가졌을 오누이 의 기특한 모습이 올해 겨울 한파마저 다 녹이리라.
김사인 시인은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및 고려대 대학원 졸업, 1982년『시와 경제』창간동인으로 참여하며 시쓰기를 시작, 시집<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및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 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신지혜.시인> /www.goodpoem.net
[뉴욕일보]2008년 12월 8일(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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