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0 09:45 | HIT : 4,236 | VOTE : 411
[시로 여는 세상]
에스컬레이터
최승호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부채가 큰 부자이거나 부채도 없이 가난한 사람이거나 천천히 혹은 빠르게 죽음에 인도되기까지 올라가고 또 내려오며 펼쳐지고 다시 접히는 계단들.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모자를 쓰고 우산을 든 궁둥이가 큰 바지 입은 사람의 뒷모습을 밑에서 쳐다보거나 고개 돌려 저 밑 계단의 태아들을 굽어보거나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서두를 게 하나 없다 저승 열차는 늦는 법이 없다. 막차가 없다.
-------------------------- 그렇다. 누가 죽음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태어남의 원인이 있기에 죽음이 존재하는 것, 때가 되면 세상 존재들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함께 저곳에 도달한다. 어찌 오늘의 이 찰나의 삶이 귀하지 않으리. 바로 여기, 살아 숨쉬는 것처럼 또 눈물겨운 일은 없다. 최승호 시인은 강원도 춘천 출생. 197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른 것인 나> 및, 그림책으로 <누가 웃었니?> <이상한 집> <하마의 가나다> <오, 이 모음으로 내가 만드는 이야기 책>, 동시집으로 <말놀이 동시집>이 있으며,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뉴욕일보-2009년 2월 17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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