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나비-김혜순2019-07-18 18:49:59
작성자
2006·08·23 00:12 | HIT : 8,851 | VOTE : 719
[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




나비



김혜순




내 왼쪽 귀와 네 오른쪽 귀로 만든 나비 한 마리
두 날개가 파닥이면 맞잡은 전신으로 파문진다

환한 날개 가루들로 네 꿈을 채워줄게
네 꿈속에 내 꿈을 메아리처럼 울리게 할게
귓바퀴 속 두 소용돌이가 환하게 공명한다
어쩌면 귀먹은 사람이 잠결에 들은 것 같은
그런 편지를 내 왼쪽 귀를 다하여 쓸게
네 꿈속으로 들어가 혈액을 다정히 흔들어줄게

이 세상 끝까지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만큼
그렇게 가볍게 날개를 파닥일 수 있겠니
문드러진 꽃처럼 피어난 우리 입술의 암술 수술로
우리가 키우는 이 나비 한 마리

나중에 나중에 우리없는 세상에 뭐가 남을까
우리 몸을 버리고 날아오를 저 나비 한 마리

우리 몸속에서 아직도 팔딱거리는 어둠처럼
아직 생기지도 않은 저 멀고먼 쌍둥이 태아처럼
두 손을 맞잡고 누운 침대 위
우리는 두 귀를 맞댄 채 생생히 썩어가네
우리 무덤 위로 바스라질 듯 두 귀를 팔딱거리는 저
나비 한 마리!



******

신 지 혜
시 인




여기 눈부신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마치 미세한 레이저망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를 전혀 다른 환상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 나비는, 내 왼쪽 귀와 네 오른 쪽 귀로 만든 팽팽한 나비 한 마리다.

시인은 은근한 귓속말처럼 다정하게 네 존재와 나비 한 마리를 만들며 끊임없이 교신하고 있다. 내
귀와 네 귀가 만든 이 나비 한 마리가, 더욱 더 머언 상상의 공간 속으로 파닥이며 날아가기를, 마침
내 이 세상 끝까지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만큼 그렇게, 가볍게 날개를 파닥이게 되기를 시인
은 열망한다.

시인의 섬세한 의식과 상상이 빚어낸 이 나비 한 마리는 두 존재가 서로 맞잡고 당기어서 만든 나비
인 것이며, 두 소용돌이가 서로 환하게 공명하고 있다.

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나비야말로 이미 우리가 없는 세상에도 파닥거리며 혼자 날아오
를 것이라 시인은 말한다.

즉 시인은 ‘두 손을 맞잡고 누운 침대 위, 우리는 두 귀를 맞댄 채 생생히 썩어가네 우리 무덤 위로 바
스라질 듯 두 귀를 팔딱거리는 저 나비 한 마리!’ 라고 나비의 영구불변성을 묘파한다. 시인의 자유로
운 심층적 구도의 상상과 열망이 만들어 낸, 이 나비는 두 존재가 만든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빛나는
공유물로서 결국 만남이란 존재와 존재의 단순한 만남뿐만이 아닌 것이며, 결국 영속적인 나비 한 마
리를 빚어내게 되는 것이라 암시하고 있다.

이 시는 가히 독특한 시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미 획일화된 현대시적 독해의 경향과 천편일률적
으로 고착화된 시적 틀에서 과감히 탈피한 독보적인 시로써, 그 상상력의 무한 경지 속으로 우리를
단숨에 매혹시킨다.

김혜순 시인은 1979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외, 다수가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4. 07. 26 17: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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