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 <시와의 대화> 섬진강1/김용택2019-07-18 19: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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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3:05 | HIT : 8,833 | VOTE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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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섬진강1-김용택  






섬진강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미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신지혜



시인





이 시는 지리산을 감싸고돌며 흘러가는 섬진강의 아름다운 곡선과 함께 아늑하면서도 유려한 정경이 한눈에 고스란히 풍경화로 들어찬다.

삭막한 도시에서 급박하게 초를 다투며 추호의 빈틈마저 허용하지 않는 도시적 삶을 이 시는 깨끗이 희석시켜주고 있다.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웃고 노을 띤 무등산이 이마를 끄덕이는 모습은 저절로 명쾌한 웃음을 머금케 한다.

시인의 섬진강 연작시에서도 보여지듯 섬진강은 곧 그의 아름다운 시들을 지속시키는 원천의 힘으로 작용한다. 시인은 늘 자연친화적인 서정미학을 고수하며 인간과 자연이 충일한 생명성으로 하나가 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형상화한다.

즉 인위적인 칼날과 기계적인 문명이 할퀴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본래 자연의 모습에서 그 호흡과 리듬으로 한 톤을 이루며 출렁이고 있는 그 섬진강을 어느덧 선뜻 따라 나서게 하며 그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경과 친근한 모습이야말로 무공해적 울림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창작과 비평'(1982) '21인 신작시집'에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섰으며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그여자네 집' 외 다수의 시집과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입력시간 :2004.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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