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 <시와의 대화>내집-마종기2019-07-18 19:27:07
작성자
2018·01·01 13:39 | HIT : 1,335 | VOTE :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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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내 집


마종기



물고기의 집은 물,

새들의 집은 하늘,

내 집은 땅, 혹은 빈 배.



물고기는 강물 소리에 잠들고

새들은 달무리에서






잠들고

나는 땅이 식는 몸서리에 잠든다.



평생 눈 감지 못하는 물고기는

꿈속에서 두 눈 감고 깊이 잠들고

잠자는 새들의 꿈은

나무에 떨어져

달 없는 한밤에 잠든

나무를 깨운다.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내 집은 땅의 귀,

모든 소리가 모여서 노는

내 집은 땅의 땀,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과 번민과 기쁨과 열 받기.

행복한 상징의 속살을 지나고

긴 산책에서 돌아오는



내 집은 땅, 지상의 배,

저항하는 지상의 파도에 흔들리는

내 집은 위험한 고기잡이배.


**************

신 지 혜

시인



우리가 사는 집은 영원히 고착된 것일까 아니다. 흔들리는 파도위에서 정신없이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의 빈 배인 것이다.

‘물고기들의 집은 물, 새들의 집은 하늘, 내 집은 땅, 혹은 빈 배’라고 시인은 갈파한다. 그리고 ‘물고기는 강물소리에 잠들고, 새들은 달무리에서 잠들고, 나는 땅이 식는 몸서리에 번민하면서 잠든다’고 한다.

그러나 물고기의 꿈은, 잠들어도 눈을 감을 수 없으니 두 눈 감고 잠드는 것이 그의 꿈이고, 새들의 꿈은 나무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 그 꿈인 것이다.

여기서 꿈꾸는 존재들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시인의 집은 곧 땅이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모으는 땅의 귀가 되기도 하며 분주하고 소란한 일상의 고단한 여정인 소금과 번민, 기쁨과 열을 섞어야만 하는 땀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결국 우리들의 집이란 이 지상의 파도에 흔들리는 위태로운 고기잡이 빈배나 다름없는 것이라 한다. 더우기 아름다운 꿈과 열망을 잉태한 채 행복한 상징의 속살을 지닌 채 돌아오는 배로서, 이 지상을 표랑하며 언제 뒤집어 질지 또한 언제 난파될지 알수 없는 극한의 위태로움을 안고 있는 빈배인 것이다.

즉 끊임없이 이 지상의 파도를 넘으며 나침반도 없이 항해하는 고독하고 외로운 꿈을 안고 표랑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이 아릿한가. 그럼에도 이 시가 쓸쓸한 허무감보다는 따뜻한 온기로 다가서게 되는 이유는 ‘그럼에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시는 우리에게 삶의 존재론적 사유의 길을 보다 투명하게 열어주고 있으며 그 생의 물결이 가슴에 잔잔히 파문지게끔 한다.



마종기 시인은 1939년 도쿄 출생, ‘현대문학’(1959년)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조용한 개선’,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등의 다수 시집과 한국문학작가상, 미주 문학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중앙일보 입력시간 :2004. 07. 19   16: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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