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물의 성상-허만하2019-07-18 21: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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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3 15:14 | HIT : 1,187 | VOTE : 279

〈시와의 대화>물의 성상-허만하(68). 


물의 성상


허만하



평면에서는 오체투지 온몸으로 엎드린다. 수직으로 설
때에는 벼랑에 기댄다. 선비의 지조를 지키기보다 경사
각을 살피기 때문에 그의 눈빛은 이따금 반짝이지만 안
정감이 없다. 사람들이 어깨를 밀치던 거리의 어디선가
본 듯한 눈빛이다. 낮은 곳을 발견하면 줄넘기하는 아이
들처럼 계단을 하나씩 뛰어내리기도 하지만 절벽에서 일
시에 떨어지는 거대한 땅울림이 되기도 한다. 이 소리 뭉
치의 프리즘은 색이 없는 햇빛을 일곱가지 빛깔의 물 연
기로 환원한다. 색이 없는 물은 투명한 껍질을 포개고 또
포개어 거울의 깊이를 만들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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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이 시는 물의 흐름과 움직임 및 표정을 유심히 꿰뚫고 있다.
물이 인간과 만물의 내부로 스며들어 생명력을 빚어내고 유지토록 하는 역동적 에너지임을 이 시는 속속들이 유추한다. 즉 무한한 물의 사유와 무궁한 상상력으로서의 물의 비전을 시인은 해부한다.
'평면에서는 오체투지 온몸으로 엎드린다''수직으로 설 때는 벼랑에 기댄다'
물이 때에 따라서 수직 굴절하며 다각적으로 변형되는 유연성과 자유자재의 수용성은 하나의 생명적 존재의 막대한 힘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시는 생명의 원형질을 구성하고 존재케 하는 물을 마치 미세한 엑스레이처럼 정교하게 포착하여 인화한다. 여기서 시인의 눈은 날카롭고 예리한 과학과 철학의 심도깊은 눈으로 반사되고 투시된다.
즉 이 지상에서 유기체적 생명을 주고 에너지를 이루는 자연과 생명애의 근원인 물의 서늘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어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다.
'색이 없는 물은 투명한 껍질을 포개고 또 포개어 거울의 깊이를 만들고 말이 없다.'에서 처럼,
또한 장인과도 같은 시인의 세공술에 의하여, 물의 성스러운 얼굴이 잔잔하고 고요하게 드러난다.

허만하 시인은 1932년 대구 출생. '문학예술'(1957)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해조''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부드러운 시론''모딜리아니의 눈''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청마풍경''길위에서 쓴 편지'등이 있으며 박용래문학상,이산문학상등을 수상했다.

<뉴욕중앙일보>200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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