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 <시와의 대화> 소/김기택2019-07-18 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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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2:55 | HIT : 8,187 | VOTE :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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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쿰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두고

그저 끔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둥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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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시인




이 시는, 내가 어릴 적 보았던 한 영상이 되살아나게끔 한다. 한때, 마장동우시장 근처에 산 적이 있었다. 전국으로부터 속속 끌려온 소들이 우시장과는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죽음을 직감한 채 뒷걸음을 치면서, 주인과 씨름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그 검은 눈망울에선 눈물방울들이 뚝뚝 굴러떨어지고 있었던 그 모습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생사의 극한에 부딪친, 그 간절한 눈물방울과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내게 큰 안타까움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참 인간이 너무 많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구나 가슴이 몹시 저려오고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둥그런 눈망울 속에 들어있는 수천만년간의 내밀한 말들은 얼마나 한스러울 것인가. 흔히 눈을 보면 그 속내를 알 수있듯이, 이 소의 까만 눈에 얼비치고 있는 순한 성정과 그것을 안으로 깊이 새기고 또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는 소의 모습이 시인에게는 몹시 안타깝게 비춰진다.

이 시속의 소는 이중섭의 힘찬 소의 모습과는 달리, 아주 순하고 정적인 모습이며 정한과 인내의 둥그런 감옥 속에 할 말들을 가둬야만 하는 소의 애잔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야산 언덕에 비끌어 매어진 채 흰 구름을 배경으로 조용히 되새김질을 하고 조용히 앉아있거나, 혹은 외양간에 소 방울을 절랑거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정황인 듯 친숙하게 다가선다.

사람이나 말 못하는 소의 공생관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사유가 절절하다. 어떻게 보면, 말없이 묵묵한 모습으로 희생을 감수하는 우리네 한국적 어머니의 정한마저 겹쳐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말을 쏟아놓지도 못하고 인내와 순종의 미덕으로 오직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줌으로써, 주위를 환하게 불을 밝혀주는 착하고 순한 모습을 그려보게끔 한다.



김기택 시인은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으로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 등과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입력시간 :2004.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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