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갈대 - 김기정<46>
<시와의 대화>갈대-김기정
갈대
김기정
갯벌에 드러누워 어깨의 통증 비빈다
지울 수 없는 아픔이여
"이래서는 안되겠어, 떠나야지"
발목 잡아당기는 늪의 질척함
그만 주저앉고 싶은 끈끈한 집착
바람을 불러들여 서걱이는 마음 빗질할 때
별들은 언제나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혼자 빛났고
강물은 먼 발치 이마 번뜩이며 흘러갔다
희뿌연 머리카락 사이 쏟아지는 햇살로 차라리
피라도 말리는 것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외쳐대며 목이 타 눈물이 났다
뭉개진 손가락과 운명의 얼음장 밑
시린 몸부림의 물결로는 지울 수 없어
누가 목이라도 꺾어달라 몸 내어주면
둥둥 떠가는 구름,
손짓하며 고개 돌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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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삶의 갯벌에 누워보라. 서걱이는 갈대 부비는 소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절박한 고독과 삶의 저변을 몰아치는 슬픔의 원형질을 시인은 섬세한 감성으로 감득한다. 이 생의 갯벌에서 혼자이지 않으면 안될 밤들이 여기 있다고 시인은 관조한다.
무거운 어깨의 통증을 비벼가며 세상 갯벌에 발을 묻은 자, 혹독한 시간을 감내 해야하는 자들은 시린 갈대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임을 이시는 내포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모두를 맡기고 갈대의 운명으로 서서 얼음을 매만져 보지 않은 이는 그 고단한 아픔을 이루 다 혜량할 수 없을 터. 무수한 좌절과 상실이 어두운 밤을 온통 뒤흔들었을 것이다.
이 질척거리는 갯벌에서 '차라리 피라도 말리는 것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외쳐대며 목이 타 눈물이 났다' '누가 목이라도 꺾어달라 몸 내어주면 둥둥 떠가는 구름'이 거기 있다고 한다. 슬프고 애잔한 세상사의 고단함들이 질척하게 녹아있는 곳, 이 시는 서정의 여백을 품어 안고 내면적 슬픔의 공간을 아름답게 형성한다. 그 예리한 감성과 슬픔이 세상 갈밭 하나를 온통 하얗게 일렁이게 한다.
김기정 시인은 1945년 경남 거제 출생, '뉴욕문학'(1996) 및 현대시 무크 '우리시대 젊은 시인들'(1999)시 당선. '시와뉴욕' 발행인 및 주간, 현 미동부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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