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길
함민복
길 위에 길이 가득 고여있다
지나간 사람들이
놓고 간 길들
그 길에 젖어 또 한 사람 지나간다
길도 길을 간다
제자리 걸음으로
제 몸길을 통해
더 넓고 탄탄한 길로
길이 아니었던 시절로
가다가
문득
터널 귓바퀴 세우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의 소리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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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의 길에 대해 論하고자 한다.
길이란 무엇일까. 살아온 인생 길과 살아갈 인생 길은 옳은 것인지 의구심을
던질 때 있다. 자신이 가는 길의 본질은 고독한 길인가. 소란스러운 길인가.
희비가 어우러진 길인가. 혹은 막다른 골목처럼 단절된 길일까 또한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시는 말한다. '길도 길을 간다 제자리 걸음으로 제 몸길을 통해 더 넓고
탄탄한 길로, 길이 아니었던 시절로'라고 인생의 길도 스스로 제 갈길을 간다고
짚어준다.
우리 인생길 위에서, 가는 길은 제 몸길을 통해 점점 더 깊어지고 탄탄해지고
하물며 길이 아니었던 시절로 향해 가는 것이라고 시인은 심도깊은 사유의 투
시로 그 의미를 꿰뚫는다.
그렇다. 그리하여 결국은 길의 길은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상의 많은 길들이 엉키어 있거나 혹은 길이 길을 이끌어 인도하지만,
자신만의 길만큼 고독하고 적적한 것은 없다. 즉 제 자신의 길의 소리를 들을만큼
존재의 적막이 깊어진다는 것을 이 시는 들려준다. 무성한 여름 숲에서나 무인도
에 홀로이 서 있거나 누구나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누구나 제 갈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인간이 가야할 유일한 각각의 입구와 통로 역시 제 스스로의 길이
아니겠느냐고 이 시는 들려준다. 함께 그 사유의 터널을 지나가며 공명을 느끼게
끔 한다.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중원 출생. '세계의 문학(1988년)으로 등단. 시집
으로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등이 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5.06.13. 17.51
신문 발행일 200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