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고원
김영탁
내 마음의 지리부도엔 개마고원이 무늬져 있네
어머니의 어머니인 그 어머니가
무섭도록 아름답고
튼튼한 처녀의 몸으로
맨머리에 집채만한 동이를 이고
찰랑이는 천지의 물위를 하얀 맨발로 건너와
내 잠결 머리칸에 감자와 귀리와 콩 우수수 쏟아붓고
돌아서며 달빛 밟는 소리 아득해라
처음 맨발이 땅에 아프게 박혀 있어도
아파하지 않고
그녀의 맨머리는 울창한 원시림으로 살아있어
종내 구릿빛 등고선으로 가로누운
그녀의 몸은
언제나 뭉긋하게 높은 산이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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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이 시는 태고의 옛 신비를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보여준다.
오래된 원시적 시간의 문을 열고 홀연히 일어서서 걸어 나오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만나게 한다. 그 여인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붕인 개마고원이면서 곧 기원인 마고다.
'무섭도록 아름답고 튼튼한 처녀의 몸으로 맨 머리에 집채만한 동이를 이고 찰랑이는 천지의 물위를 하얀 맨발로 건너와 내 잠결 머리맡에 감자와 귀리와 콩 우수수 쏟아붓고 돌아서며 달빛 밟는 소리 아득해라'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비적인 태고의 우리 어머니와 생생한 모습을 해후하게 된다.
그 여인은 무섭도록 아름답게 현현되어 우리에게 다가서므로 신화적 본질과 존재론적인 심연 속으로 빨려든다. 더욱이 그녀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품성을 지녔으므로 풍성한 씨앗을 고루 뿌려준다.
시인은 명징하고 신비적인 모습으로 농경의 시간을 건너오는 여인인 국토의 지붕 개마고원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맥락과 뿌리가 시작된 그 시원임을 투시하여, 예리한 통찰과 상상의 그 심연속에서 빛을 뿜는다.
이 시속의 우주적 기원의 숨소리가 곧 우리 내부를 힘센 동력으로 푸근하게 체현시키고 생명력의 점화를 힘껏 당겨준다.
김영탁 시인은 1960년 경북 예천 출생. 계간 '시안'(1998년)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새소리에 몸이 절로 먼산 보고 인사하네'가 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5.10.27.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