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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의 대화> 물속에 옛  마을-장석주(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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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옛 마을
장석주
         
잔 물결마저 잦아든  날엔
물  속에 잠긴 옛 마을 환히 보인다
물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두 개의 옛 마을
오늘은 누구네 집에 혼례라도 치르는가
동네 너른 마당에 쳐진 차양
마당 한 귀퉁이에는 설설 끓는  무쇠솥
사람들의 잰 발걸음 소리가 골목길을 울리고 두런두런 나누는 소리마저 또렷하다
오늘은 누구네 새 집이라도 짓는가
햇빛은 종일 좋은 재목을 실어 나르고
늙은 목수들이 길 잘든 연장을  갖고
새 기둥에 뚝딱뚝딱 몸을 치고 있는 중이다
물 속에 저렇게 많은 찰나들이 우글거린다
찰나들이 모여 만든 저 화엄(華嚴)의 마을
물 속  마을에
내 소시(小時)의 싱싱한 슬픔이 웅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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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물 속 마을이 선연하고 환하다. 
 이 시속엔 두 가지의 선명한 기억이 사진처럼 명백하게  투사되고 있다. 
하나는 혼례를 치르는 마당 안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새집을 짓는 광경으로 두 장면 모두 새로이 삶을 구축하는  정점이라는  의미로 출발을 예시하고 미래의 효시를 내포한다. 
 이시는 물 속의 기억터널을 전생퇴행처럼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과거와 현재와의 양가적인 존재인식을  드러낸다. 물의 의미 또한 만물의 근원임과 동시에 인간의, 양수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물 속에 저렇게 많은 찰나들이  우글거린다 찰나들이 모여 만든 저 화엄의 마을'에서 보듯, 생이란 찰나들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곧 무구한 화엄임을 시인은 해찰한다. 또한  날카로운  예지와 직관으로 물 속 기억의 궤적을 꿰뚫어 생동적 슬픔이 웅성이고 있음을 아름답게 관통하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월간문학'(1975)등단. 시집으로 '햇빛  사냥''완전주의자의 꿈''그리운 나라''어둠에  비친다''어떤 길에 관한 기억'등 다수 시집 및 평론집 등이 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5.7.25.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