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 <시와의 대화> 봉분을 만들지 마라/이성복2019-07-1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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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3:10 | HIT : 8,774 | VOTE : 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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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봉분을 만들지 마라-이성복  






봉분을 만들지 마라



기념비를 세우지 마라. 장미꽃으로 하여

그저 해마다 그를 위해 피게 하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기념비를 세우지 마라] 〈작게>



이성복



합천의 도예가 김종희 선생은 돌아가실 때 봉분을 만들지 마라 했다. 짐승들 다니는 데 걸리적거리기 때문이다. 푯말은 땅에 묻어 묫자리만 알리라 한 것도 사람의 몸이 땅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다. 자손들 모여 곡하지 말고 국밥과 고기 대신 차를 나누라 한 것도 사람의 죽음이 별일 아니기 때문이다. 화장 대신 매장의 관례를 따른 것도 땅속 미물들의 밥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와서 굶주리지 않았으니 가서도 굶주리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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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시인



죽음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여 만물에 근원적인 도가 있어 우주만물이 생성하고 변화되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이 죽는 것도 결국 자연스러운 것. 근원적인 도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할 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아무나 도달하지 못한다.

인간 세계의 질서가 우주 순환고리를 형성하여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한다.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생각하는 김종희 도예가는 이미 죽음이 만물의 순환고리라는 것을 통찰한 '깨달은 자'이므로 봉분이 짐승들 다니는 데 걸리적거린다는 것을 감지한다.

또 화장대신 미물들의 밥이 되어야 마땅하다 생각하고 그 무욕의 도리로 자신을 비워내는 고매한 선적 경지에 도달한다. 오쇼 라즈니쉬 역시 죽음을 치장하여 온갖 아름다운 문구의 묘비를 세우고 멋진 무덤을 만드는 것은 죽음을 장식하려는 욕망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즉 모두가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는 상성의 이치를 훤히 깨달은 자만의 사려 깊은 품성인 것이다. 죽음은 생명을 키워낸다. 그렇지 않다면 미물들은 어디서 태어나고 저 싱싱한 초목들은 무엇으로 다시 푸르러지겠는가.



이성복 시인은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문학과 지성'(1980)으로 등단. 시집으로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아 입이 없는 것들''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및 다수시집과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입력시간 :200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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