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유리의 技術--정병근.
유리의 技術
정병근
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끊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환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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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인
여기 경이로운 유리창 한 장이 있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면 실로 마술같은 풍경이 일어난다. 이 풍경 속에선 물론 적막마저도 숨을 죽이며 지켜보리라.
이 시의 앵글은 유리창의 정확한 각도 속에 맞추어져 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물의 기막힌 풍경은 유리의 기술에 의해서 피 한 방울 없이 고스란히 떠내진다.
기존의 우리 눈에 식별이 가능한 것들에만 편향된 시선을 모아왔던 지극히 편식적인 기존의 인습을 이 시는 단번에 불식시킨다. 인간의 시간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유리의 서늘한 칼날, 실로 고정된 사물들이 부동하다는 인식은 그 얼마나 안이한 인식이란 말인가. 사물의 존재에 대하여 뼈를 발리고 살을 떠내는 숙련된 솜씨의 유리가 있는 한, 그 같은 사고는 언제까지나 유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주물리학자의 눈 안에서는 모든 고착된 실체들도 하나의 움직이는 파동체에 불과하며 밀도를 가진 아원자인 미립자라는 것, 비물질계와 물질계를 구분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정의되고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물리학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방임일 것인가.
이 시는 사물의 소리없는 움직임을 서늘하고 예리하게 관통하는 서늘하고 예리한 눈이 있다. 풍경을 피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떠내는 유리의 기술이 있고 그 유리를 떠내는 시인의 날카롭고 숙련된 칼날의 기술이, 그 섬광을 번뜩이고 있다.
정병근 시인은 1962년 경북 경주 출생. '불교문학'(1988년) 등단 및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으로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가 있다.
입력시간 :2005. 01. 24 17: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