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 <시와의 대화> 파문/권혁웅2019-07-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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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2:59 | HIT : 7,979 | VOTE :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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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파문-권혁웅  





파문





권혁웅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

신지혜

시인



이미 오래 되어 희미하게 잊혀졌거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비오는 날, 어느 집 처마아래서 비를 그어도 좋으리라.

혹은 잊혀진 옛사랑이나 이런 저런 사연으로 헤어진 이들에게 애잔하고 슬픈 또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주파수를 맞추어도 좋으리라. 애잔한 추억의 빗줄기들이 발밑에 내리꽂는 그 무수한 동그라미를 응시하며 그간의 오랜 부재와 부재사이를 확인하고 흠뻑 젖어도 좋을 것이다.

잠시 빛나다 스러진 것들의 아릿아릿한 자취나 흔적들이 추억 속에 바글거리는 저 오래된 슬픔들은 또 어떨까.

문득 그럴 때가 있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어떻게 이 무상한 시간 속을 어디쯤 제각기 흘러갈까.

여름 뜨락에 불꽃으로 작열하던 그대들은, 이 시의 빗방울과 빗방울이 내리 꽂는 파문속에서 끝없이 함께 번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잊혀졌거나 잃어버린 사람의 음파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동그라미를 그리며 젖어야 했을 반대쪽 사람을 이제 해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일지라도 귀를 기울여 전율하게 될 것이다.

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섬세한 심미적 시선과 함께 그 상상력의 예민한 촉수를 따라나서게 한다. 그리하여 비내리는 수채화 한 폭과도 같은 그 그림속에서 오랜 추억의 파문에 마음껏 젖어 들게 함으로써 행복하게 한다.



권혁웅 시인은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및 1997년 문예중앙(시)으로 등단. 시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와 저서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 ‘시적 언어의 기하학’이 있으며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입력시간 :2004.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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