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대화>

제목[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개들은 말한다-정현종2019-07-18 19:29
작성자
2018·01·01 13:46 | HIT : 1,401 | VOTE : 231
<시와의 대화> 개들은 말한다 -정현종



정현종



개들은 말한다

나쁜 개를 보면 말한다

저런 사람 같은 놈.

이리들은 여우들은 뱀들은

말한다 지네 동족이 나쁘면

저런 사람 같으니라구.



한국산 호랑이가




멸종된 건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전설의 멸종

깨끗한 힘의 멸종

용기의 멸종과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날(生) 기운의 감소

착한 의지의 감소

제정신의 감소와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하여간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은 아니지 않은가.





*******

신 지 혜
  시인

이 시는 저절로 통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사실 못된 사람에게 짐승 같다고 표현하는 통속적 관념을 역설적으로
여지없이 깨뜨리고야 만다.
개나 이리와 여우들이 인간을 일컬어 무어라 말하겠는가. 그들은 저희들끼리 못된 동족에게 사람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인간은 만물과 한 둥우리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월한 존재라 믿으며 지배권력으로 모든 것들 위에 당당히 군림하지 않던가.

 

어찌 그뿐인가.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슴없이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며 온갖 행위를 일삼기도 하는 장본인들이 바로 인간이 아니겠는가.
이 시는 만물의 지배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인간들, 그 비양심적이고 서슴없이 잔혹하거나 몰염치한 인간들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하고 있다.

그 예리한 메스로 인간의 고정관념을 반어적 역설법으로 환치시킴으로써, 인간의 부끄러움을 아프게 일깨워주고 있다. 인간들이여, 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비하하는 동물들, 개나 이리와 여우들에게 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시인은 신선한 웃음과 해학으로, 대상의 고정된 시선과 판에 박힌 인식을 거부하며 새로운 각도로 이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또한 인간적 자성을 진지하게 돌아보게끔 하는 뜨끔한 해학과 풍자가 서늘하게 깃들어 있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1939년 서울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물의 꿈’ ‘나는 별 아저씨’ ‘고통의 축제’ ‘세상의 나무들’외 다수가 있으며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4. 08. 03   17: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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