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1 13:54 | HIT : 809 | VOTE : 155 |
| | <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 의자......이정록 오피니언 > 사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신 지 혜
시 인
이시는 따뜻하고 편안하다.
가족에게, 벗에게, 이웃에게, 삼라만상에게 의자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신선한 발상과 함께 정감 있는 인식을 안겨준다. 인간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의자가 되어주거나 혹은 타의 의자에 앉게되어 상호 맞물린 존재라는 귀한 인식마저도 이 시는 짚어준다.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누구의 의자가 되는가. 누구의 의자에 앉게 되는가. 누구나 이런 따뜻한 의자가 되어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세속적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 찬 에고적 이유는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알력과 괴리감마저도 의자라는 개념 안에서 모두 무화되고 화해되지 않겠는가.
허리가 아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어머니의 한 말씀이 매개가 되어 점층적인 사유와 통찰로 이어지는 이 시는, 꽃도 열매도 돌아가신 아버지나 혹은 참외, 호박같은 그 생명적 존재에 대해서도 두루 경외감을 갖게 한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라고 어머니는 한 말씀 남기신다. 즉 난해한 경구나 설법이 아니면서도 누구에게나 바로 의자라는 인생살이의 철학과 비법으로 삶의 지혜와 여유를 갖게하는 아름다운 잠언이 들어있다. 이 시의, 사려깊은 시인의 안목과 통찰이 독자의 가슴속 깊이 편안하게 와 닿는다.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외, 시집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등을 수상했다.
뉴욕중앙일보 입력시간 :2004. 08. 30 15: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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