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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의 대화> 꽃을 바치지는 않겠습니다-박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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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바치지는 않겠습니다
박건호
나는 당신을 위해
꽃 한 송이 바친 일이 없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꽃으로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다면
그까짓 수천 송이는 못드리겠습니까
당신을 생각하다 가슴이 터질 때면
눈물로 땜질을 했고
땜질한 자리가 아파 올때마다 편지를 쓰지만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언제나 어휘가 모자랐습니다
나는 꽃을 바치지는 않겠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런 것들은 내 마음을 전해 드리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
아 차라리 가슴을 태워 재로 만들 수 있다면
당신께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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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지 혜
시 인
'한 사람을 사랑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인류를 사랑하기란 불가능 한 것'이라고 H.입센은 말한다.
한사람에게 열광하는 사랑, 애태움과 설레임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리움으로 한 사람을 위하여 어둠을 하얗게 탈색시킨 적이 있는가. 세상 한바닥을 가득히 채우고도 모자라 가슴을 다 태우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사랑의 힘이야말로 이 지구의 아름다운 시간들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는 사실을..
이 시는 우리를 옴짝 달싹할 수 없이 매료시킨다. 나는 당신을 위해 꽃 한 송이 바친 일이 없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진실한 사랑의 화력은 그깟 수천 송이의 꽃을 능가하고도 남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지상의 모든 언어를 동원할지라도 그 사랑의 진심의 표현에는 모자랄 만큼 적확하지 않다. 시인의 투명하고 섬세한 감성은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흠뻑 몰아넣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감히 비견할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차라리 가슴을 태워 재로 만들어 보낼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한다.
여기선 가히 숨이 딱 정지될 수밖에 없질 않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도 아무리 언어의 진수라 한들 타버린 가슴만큼 더 확실한 사랑의 결정체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 아름다운 시는 누구도 앓여낼 수 없는 시의 연금술사적 술회로 형형한 빛을 시리도록 내뿜는다. 이 시를 읽는 자도 역시 활활 타 버릴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언어의 결빙을 녹이며 해체시킨다.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에너지로 우리 감성을 온통 포로로 연행한다.
박건호 시인은 1949년 강원도 원주 출생. 시인이며 작사가. 시집으로'영원의 디딤돌' '타다가 남은 것들' '나비전설' 및 다수의 시집이 있으며 가사집으로 '모닥불' '철새의 편지' '콩나물에 뿌린 물빛 사랑' 및 다수 투병기 및 에세이집 등이 있다. 'KBS 올해의 최고 인기상' 'KBS 가요대상' '카톨릭 가요대상' 'ABU가요제그랑프리' '국무총리상' '한국방송협회 아름다운 노래 대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중앙일보.입력시간 :2005. 02. 14 18: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