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우리 모르는 사이......서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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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르는 사이
서지월
우리 모르는 사이
인적 끊긴 어느 산길에 버려진
벌레 한 마리
쓸쓸히 숨을 거두고 있을지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저홀로 벤치
위에
아무 생각없이 떨어져 누워
하늘 바라보는 나뭇잎 한 장
그도 잊혀진 옛 애인처럼
영원의 잠속으로 빠져들었는지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밤이 걸어서 지나가고
내 몸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날숨소리 그것들도
어디선가 사막을 이뤄
낙타들 줄지어 터벅터벅 걸어가게 하는지
나는 아직 몰라
우리 모르는 사이
중심에서 한 점으로 이탈하는 모든 눈물들
흩어져가는 그들 뒷모습만
아련히 바라볼 뿐
나는 나를 잘 몰라
*****
신지혜
시인
이 시는 눈물겹다. 쓸쓸한 생이 인생의 본질이라면 얼핏 고요한 적막뿐일 것만 같은 저 세상은 모두 각자 쓸쓸하게 피고 지는 존재들의 거대한 늪임을 암시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외로운 벌레 한 마리의 죽음은 '인적 끊긴 어느 산길에서 쓸쓸히 숨을 거둘 것'이라고 시인은 아름답고 따스한 연민의 시선으로 우리를 심미적 감동으로 한껏 몰아넣는다.
우리 모르는 사이 무궁무진하게 색깔을 달리하며 일어나는 진정 쓸쓸하고도 또 쓸쓸한 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무감각하면서도 비루한 현실인지를. 그리고 소리도 없이 모든 일들은 발아하고 사라질 뿐이며 아무도 모르게 지워지기도 한다. 혼자 걸어가지 않으면 안될 그 낙타 같은 숨결의 흔적마저 지워지는 일들.
우리 모르는 사이 쓸쓸한 그 상처들은 눈물로 피었다 지고 있는데 나는 과연 안일한가 이시는 깊이 자성케 한다. 얼마나 제 어깨를 스스로 들먹이며 가늘게 떨고 울어야 할 것들이 이 지상에는 많던가.
홀로 침묵의 그 뺨에 눈물을 부벼야 하는 날들이 이 지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이냐고 시인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이 위무해준다. 즉 이 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벌레 한 마리 나뭇잎 한 장의 존재를 일러준다. 그리고 눈물에 대한 무감각을 아프게 일깨운다. 이 지상에서 외롭게 반짝이는 슬픔마다 가만히 다가서서 끌어 안으라하며, 우리를 온통 따스한 감동으로 여울지게 한다. 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서지월 시인은1955년 대구 출생. '심상'(1985) '아동문예'(1986) 및 '한국문학'(1986)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 '강물과 빨랫줄'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 및 다수 시집이 있으며 대구시인협회상 한하운문학상 정문문학상 장백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입력시간 <2005. 02. 01 15: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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