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2 15:32 | HIT : 5,498
이 시대의 건축가
신 지 혜
저 거미 배포 좀 봐라 저렇게 꼼짝 않고 제집에 제가 반해버린 거미는 참 가진 게 줄밖에 없어 티끌같거나 무변광대하거나 단번에 옴짝달싹할 새도 없이 결박해버리다니
평생 제 집의 고요에 길들은 저것, 혼자면 어떠리 제 허공 법망 한가운데 큰 대자로 매달려 하루종일 꾸역꾸역 빠져나가는 시간에 낚시바늘 던져 넣고 졸고 있는데
그가 지었다 헐어버린 집이 그간 몇 채인가 이리저리 허공 꿰매고 누비고 중앙에 떠억 버티고 들어앉아 있으면 무서울 것도 아플 것도 없는 한 생이 지나간다
얼핏 날아든 날벌레 한 마리 버둥거리다 가만히 숨 멎고 제집 들고나는 문도 없이, 집문서 땅문서도 없이 아무데나 제몸 하나로 지은 건축물이 적멸보궁 아니겠느냐고 느릿느릿 주검을 향해 천천히 다가서는 거미 한 마리 봐라.
-계간[시작] 2008년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