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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무 한 채.........................................『현대시학』.2011년 1월호2019-07-16 20:53:57
작성자
2011·01·08 08:29 | HIT : 3,012
나무 한 채

 
                                             신지혜                        


잎 트일 무렵, 나무의 뿌리는 골몰한다
집을 짓듯이
어디로 창을 낼 것인가,
남향으로 할 것인가, 북향으로 할 것인가,
내면의 청사진 펼쳐놓고
꼼꼼히 각도 재고 초크 그으며 줄자 들이댄다 드디어
나무 한 채도 온 피부 열어 큰 숨 몰아쉰다
온몸 켜지자 나뭇잎이
프로펠라 가동한 듯 와짝 자라나고
한 그루 의연히 제 터 잡는다


얼핏 제멋대로 가지와 이파리 매다는 것 같아도
어떤 가지는 동쪽으로 어떤 잎은 서쪽으로
가지와 잎 타고난 제 품성대로
적합한 생존원리 따라 자리매김된다 그리하여
한 채 반듯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한 뿌리에 난 식구도 어떤 가지는 장남으로, 어떤 가지는 막내로,
마음 여려 세상 두려운 내성적 가지는 자꾸 뒤쪽으로 가 숨고
활달한 외향적 가지는 햇빛 잘 드는 곳에 자리 잡기도 한다

나뭇가지들 틈새없이 빼곡하게 한 구색 맞추기 어디 쉬운가
뿌리는 우듬지 이파리까지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어느 한곳,
막히거나 터져선 결코 삶의 희락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공 속 그렇게 올망졸망 숨 트인 이것들
제각기 햇빛과 바람 사귀고 서로를 독해할 때
뿌리는 땅 속 더 깊숙이 발 뻗어가며 사투를 건다 그야말로
안간힘으로 흙의 힘줄 잡아당기며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한다


이윽고 우람한 나무 한 채
지구 등짝위에 업혀 마치 한 몸인 듯 따라 돌고 있다



-[현대시학]201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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