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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오늘은 좋은 날/신지혜------------계간『차령문학』2011년 가을호2019-07-16 21:02:10
작성자
2011·09·12 12:14 | HIT : 2,813
오늘은 좋은 날


신지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은 좋은 날이다
지구상에 누가 죽었다거나 천재지변 혹은
가슴 서늘히 쓸어내리는 사건 없는 날은 좋은 날이다
누가 내게 긴박한 벨을 울리지도 않았고
누가 내게 밀린 독촉청구서를 보내오지도 않았다


나는 무엇에도 쫓기지 않는 자
나는 나와 적절히 타협한 자
나는 지워진 듯 잊혀진 듯 지구풍경의 실루엣 속에서
물풀처럼 한가로이 나부낀다
나 라는 의무와 역할 내려놓고
세상 경쟁 속에서 나를 탈출시켜
제멋대로 무심히 흘러가게 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내게 큰 포상 주어야 할 일,


오늘이 최선 다해 조금씩 지워지는 일조차
나와 무관한 날
오늘은 저 무색 무미 무취의
공기와 물 같아서 좋은 날
죄다 삭제되어도 될 생각들이 오늘은 단 한 점도 출현하지 않아
좋은 날


아흐.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없는 오늘은 좋은 날이다


어제가 오늘, 오늘이 내일 같은 날이 더 특별한 날
이 지구 항아리 속 아무것도 담아놓을 일 없어
천지사방 동서남북으로 내 팔다리 길어지고 내몸 둥 떠오르는 오늘,
이쪽 하늘 맛도 보고 저쪽 하늘도 뜯어먹어보고


나는 마음 한 벌 벗어놓은 채 가난한 자의 유유자적함 이제야 배운다



계간[차령문학]2011.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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