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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허공 기어오르는 노인/신지혜---------계간『리토피아』2012.봄호2019-07-16 21:09:31
작성자
2012·02·26 12:06 | HIT : 2,552
허공 기어오르는 노인



                                신지혜


한 노인이 구불구불 허공 오르고 있다
허공은 그의 유일한 암벽이다
그의 겨드랑이에서 떨어지는 부신 햇살들
노인은 같은 자리에서 상승하고 있다
새가 되고 있다
허공 아찔한 암벽 기어오른다
그는 하네스와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로프, 런너, 퀵드로, 카라비너를 자유자재 사용한다
허공은 그의 평생 도전장이다
때로 오르는 길보다 미끄러져 내려오는 때 더 많기도 하지만
그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초크를 손에 바르고 그가 해머로 자일을 박는다
허공 조각들 둔탁하게 쏟아지는 소리,
낙석이다


오늘 노인은 어제보다 더 조금 높이 허공을 점거한다
그는 평생 동안 한시도 포기한 적 없다 한 자리 서서
오직 허공 암벽타기로 그의 생은 치열하다
온몸 긁힌 상처와 주름투성이 각질들,  


이 노인 앞에 서면 그저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직 저절로 마음 숙여진다
노인은 모든 역사를 한 몸에 다 꿰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와잇 마운틴 산비탈,
오직 한 허공을 기어오른 히코리 소나무
4,700여 년 동안 한 자리 초연히 서있다








-계간『리토피아』2012.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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