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제목빵 한 덩이/ 신지혜............................[외지].2008.2019-07-16 04:16:38
작성자

2008·03·15 07:09 | HIT : 3,741

 

빵 한 덩이


신지혜



오븐에 갓 구운 호밀빵을 나이프로 자르다 보았다  

이렇게 수많은 방, 천둥 번개 살다 간 방,

누가 여기서 나비 알을 까고 나갔는가.

알집같은 무덤이 수백 채.

오븐 속에서

뜨거운 입김에 부풀어 터지면서

나가떨어진 고요의 이 빈집들, 참 방방이 환하구나



폭신폭신 천만개 구멍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 개미떼 같은 사람들 다 어딜 가고

빵 한 덩이 이리 둥글고 환한 空을

수백 채 껴안았는가



노릇하게 구워진 빵 조각에 버터 듬뿍 발라

내가 空을 목구멍 미어지게 삼킨다

저편 노을에 밀리는 푸른  밀싹들 다투어 쓰러지고

천의 공동묘지 하얗게 버즘처럼 일어선다



산다는 것,

화엄의 살내음 모락모락 피워올리는 빵 한 덩이에

온 저녁 허기가 다 따뜻해진다





-2008년 『외지』-

#신지혜 시인# 빵 한덩이-신지혜# 외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