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세우는 바닥 신지혜
개미가 욕조타일 기어오른다 나는 수돗물을 틀어버릴까 하다가 나도 몰래 점점 응원하기에 이른다 그렇지, 그렇지! 더 높이 오를수록 바닥이 캄캄하게 쌓인다 마침내 그가 천장 모서리까지 올라가 천야만야 바닥의 깊이를 내려다본다 저 깊은 바닥들 사이 허공이 꽉 끼여있다 오, 바닥이 있어야 허공이 있는 법, 바닥들이 허공 세우는 구나 개미가 더 이상 오를 곳 없자 이번에는 천장을 거꾸로 매달려 기어간다 개미에겐 천장이 곧 바닥이다 개미가 떨어뜨린 허공에 내가 산다 내가 그의 허공에 하느님처럼 둥 떠있다 바닥이 바닥을 굴리는 구나 바닥이 돌고 도는 구나 바닥이 마주보며 돌고 있구나
저 무한 허공도 힘센 우주의 바닥이었구나
문학과창작 2021년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