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톱밥
신지혜
한때 숲을 일구었던 위풍당당했던 자작나무 아버지가 곱게 갈린다 이리저리 밀리기만 했던 몸 안의 물길들이 분말이 되어 바닥에 쌓인다 가렵던 몸 안의 상처들이, 채 발산하지 못했던 눈물들이, 엉겨 붙었던 타액들이, 조용한 가루가 되어 쌓였다 그는 곱게 갈려 톱밥 봉투에 담겨 이름 모를 어느 집 뜨락에서 이제 막 잎 틔우는 어린 체리나무 발목을 따뜻이 덮어주었다 체리나무는 그렇게 톱밥의 노래를 들으며, 우레 치는 밤을 견디었다 그 소식 들은 벌레들이 무성한 숲의 노래 듣기위해 톱밥 속으로 기어들었다 노래는 번창했다 체리나무 가지 물관을 타고 올라 하늘에 울려 퍼졌다 지느러미 털며 헤엄치는 구름 떼가 귀 열고 몰려들었다 가만 들어봐. 저 자작나무 아버지 잎 터는 소리를, 체리나무 속에서 한때의 자작나무 아버지가 다시 살고계시잖아 태풍에 쓰러지려는 체리나무의 슬픔 품어주느라 톱밥이 다 젖는다 톱밥아버지가 달짝지근한 냄새로 잘 썩는다
잘 썩어가는 향기가 온 여름을 장악한다
2021년 시와경계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