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판나비
신지혜
어둠의 스크린 속으로 내가 빨려들었다 나는 미세한 발광체였다 내 몸이 없었다 거미줄보다 가느다란 레이저 망을 뚫고 내가 긴긴 통로를 따라 무작정 빨려 들어갔다 내가 발을 쭉 뻗으니 무엇인가 발끝에 닿았다 팔을 쭉 뻗으니 손가락 끝에 무엇이 닿았다 그래도 어딘가 빈곳이 있었다 아직도 우주가 헐렁했다 내가 다 자라려면 아직 멀었나요? 나는 가끔 외치곤 하였다 나를 담은 우주가 자주 겉돌았다 나는 몸부림치듯 내 집을 뒤흔들었다 집이 무너져 내렸다 내 몸에서 희디흰 그 무엇이 서서히 날개를 펼쳤다
젖은 은판 나비였다
계간 [미주시세계]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