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큰 회화나무 꽃 떨어진 무늬
한영옥
무더운 어느 하루라도
큰 회화나무에서 떨어진 꽃무늬는 참 좋다
줍고 싶을 만큼 태가 흐르는 것도 아니고
쓸어버려야 할 만큼 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제 그늘 안쪽으로 살풋하게 내려앉은,
흰빛에서 연둣빛 사이를 오가며 엮은
수수한 돗자리처럼 보이는 슴슴한 무늬가
두어 평 남짓 안에서 고요하다
수수한 자리에 슬며시 들어가서
몹시 우는 매미를 열심히 생각해주노라면
이해 불가능에서 이해 가능으로 길이 꺾이고,
꺾이자마자 길은 곳곳이 맘 좋은 초록이다
몇 송이 꽃잎을 더 내려 앉혀주며 이름은
편하게 제 깊이를 다 펴고 한숨 잔다
고요한 그 사람의 속 깊은 염려 속인가.
생각수레 덜컹거리지 않아 악의(惡意)도 잘 잔다
꺾인 길섶으로 한참은 더 초록이 좋으리
큰 회화나무 꽃 떨어진 무늬는 좋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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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회화나무 꽃 떨어진 무늬아래 사로잡혀 보라. '슴슴한 무늬가/두어 평 남짓 안에서 고요'해진 자리, 회화나무 아늑한 그늘 속에서 그대 또한, 꽃 무늬들의 그림같은 색채에 넋 놓고 오래도록 가만히 붙박혀 있어도 좋으리라.
한영옥 시인은 197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적극적 마술의 노래> <처음을 위한 춤> <안개편지><비천한 빠름이여><아늑한 얼굴>등이 있으며, <한국현대시의 의식탐구>의 저서가 있다. 현 성신여대 교수이며, 한국예술비평가상, 천상병시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보스톤코리아신문.2008.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