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시가 있는 세상]
새떼를 베끼다
위선환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다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공중이다, 라고 쓴다.
--------------------------
상호 부딪치는 목숨들이야말로 얼마나 눈물겨운가. 우리의 생애가 그렇다. 하지만 두려워 마라. 삶을 직격으로 관통하는 일은 상처와 고통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삶의 과정에서 정면으로 통과하는 일. 곧 모두는 몸이 비어있으므로 화통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빈 몸의 생들이 오고가는 빈 공중 세계에서의 일이니, 무엇이 더 두렵겠는가. 이 시가 생의 한 道를 일러주며 흔들리는 삶의 등을 두들겨준다.
위선환 시인은 전남 장흥 출생. 2001년 <현대시>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새떼를 베끼다>등이 있으며,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보스톤코리아신문]2008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