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항아리 속 된장처럼
이재무(1958~)
세월 뜸들여 깊은 맛 우려내려면
우선은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자는 거야
햇장이니 갑갑증이 일겠지
펄펄 끓는 성질에 독이라도 깨고 싶겠지
그럴수록 된장으로 들어앉아서 진득허니 기다리자는 거야
원치 않는 불순물도 뛰어들겠지
고것까지 내 살(肉)로 풀어보자는 거야
썩고 썩다가 간과 허파가 녹고
내장까지 다 녹아나고 그럴 즈음에
햇볕 좋은 날 말짱하게 말린 몸으로
식탁에 오르자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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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속도전이다. 퀵 서비스가 마켓팅의 승부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자리매김된 이 시대,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깊은 인내와 수련으로 인생의 맛을 제대로 우려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 시는 엄숙하고 진지한 말씀으로 치열한 대열에서 뒤 처진 자들의 상처를 따스하게 위무하고, 가벼운 인스탄트적 세태를 일깨운다. 비록 더디지만 제대로 익히고 속깊이 우러난 삶의 진면목이야말로, 그것이 바로 생의 正道인 것, "썩고 썩다가 간과 허파가 녹고/내장까지 다 녹아나"오래 견뎌내고 스스로를 숙성시킨 저 참맛의 된장같은 진국인 사람이어야 할것이라고, 이 시가 큰 화두 하나 내려놓아 깊이 자성케 한다.
이재무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문학>과<실천문학>, <문학과사회>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생의 변방에서>가 있다.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윤동주상 등을 수상했다.<신지혜.시인>
<신문발행일.Nov. 16.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