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자벌레
반칠환(1964~)
한심하고 무능한 측량사였다고 전한다. 아무도 저이로부터 뚜렷한 수치를 얻어 안심하고 말뚝을 꽝꽝 박거나, 울타리를 치거나, 경지정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딴에는 무던히 애를 썼다고도 한다. 뛰어도 한 자, 걸어도 한 자, 슬퍼도 한 자, 기뻐도 한 자가 되기 위해 평생 걸음의 간격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저이의 즐자엔 눈금조차 없었다고 한다.
따뜻하고 유능한 측량사였다고도 전한다. 저이가 지나가면 나무뿌리는 제가 닿지 못하는 꽃망울까지의 거리를 알게 되고, 삭정이는 까맣게 잊었던 새순까지의 거리를 기억해 냈다고 한다. 저이는 너와 그가 닿지 못하는 거리를 재려 했다고 한다. 재면 잴수록 거리가 사라지는 이상한 측량을 했다고 한다. 나무 밑둥에서 우듬지까지, 꽃에서 열매까지 모두가 같아졌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뭇가지의 온기를 이파리 떨어진 상처의 진물을 온 나무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저이의 줄자엔 눈금조차 없었다고 한다.
저이가 재고 간 것은 제가 이륙할 열 뼘 생애였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늘그막엔 몇 개의 눈금이 주름처럼 생겨났다고도 한다. 저이의 꿈은 고단한 측량이 끝나고 잠시 땅의 감옥에 들었다가, 화려한 별박이자나방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별과 별 사이를 재고 또 재어 거리를 지울 것이었다고 전한다.
키요롯 키요롯-느닷없이 날아온 노랑지빠귀가 저 측량사를 꿀꺽 삼켰다 한다. 저이는 이제 지빠귀의 온몸을 감도는 핏줄을 잴 것이라 한다. 다 재고 나면 지빠귀의 목울대를 박차고 나가 산에 가 닿는 메아리를 잴 것이라 한다. 아득한 절벽까지 지빠귀의 체온을 전할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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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대한 줄자가 있다. 자벌레가 세상을 잰다. 그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순간순간을 수행자처럼 온몸으로 잰다. 그러나 거리를 측량하자마자 거리는 곧 지워진다. 눈금없는 자로, 한 뼘 한 뼘씩의 거리를 다 잰후에 드디어 노랑지빠귀의 몸이 되고 핏줄을 재고 인생을 재고 체온을 재는 자벌레, 결코 흔적이 남지 않으나, 모두가 되는 자벌레의 거리가 눈물겹고도 황홀하다. 줄창 끊어지지 않는 거리, 언제까지나 늘지도 줄지도 않는 완전한 거리의 道다!
반칠환 시인은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웃음의 힘]등, 동화집「하늘 궁전의 비밀] 및 시선집「누나야]「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다.<신지혜.시인>
<신문발행일> Apr.27.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