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고양이 문인수(1945~)
고양이 한 마리가 멀찌감치 나타났다. 나는 고민중이었으므로 이 사막 같은 마음에 저 무슨 말인가. 통째로 들어오는 고양이. 내 앉은 쪽으로 야금야금 다가오는 고양이. 희고 누런 얼룩무늬가 계속 섞이면서 갈라지면서 저도 뭔가 골똘한 고양이, 앙다문 입이 나사로 꼭 꼭 조인 듯 야무진 고양이, 고양이는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간다. 내게 무슨 터널이라도 뚫려 있는 것인지 털끝 하나 건들리지 않고 통과하는 고양이. 고양이가 가로지른 산책로 중간이 한 번 툭, 끊긴다. 널 주시하던 시간이 그렇게 한 번 툭, 끊긴다. 숲의 언덕 너머로 곧장 사라지는 고양이, 제 구멍 메운 것 같다. ************** 어떠신가. 이 시속의 팽팽한 긴장 속 시선을 따라 나서보자. 유유자적하게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희고 누런 얼룩무늬가 계속 섞이면서 갈라지면서 저도 뭔가 골똘한 고양이'.우연과 필연의 마주침으로 고양이는 집중된 한 장의 풍경 속을 횡단한다. 툭, 끊긴다고 한다. 시인의 줌 렌즈 속의 고양이, 그 시선마져도 뚝 끊긴다. 고양이의 존재가 넘어간 저편, 본래 '제 구멍을 메운 것 같'은 이 완벽한 대단원의 묘미를 오래오래 곱씹게 하는 마법에 걸린다. 이 특별한, 다큐 출현무대 한 장! 문인수 시인은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뿔><홰치는 산><동간의 높은 새><쉬!><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가 있으며,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May,11.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