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노인과 수평선
최동호(1948~)
저물녘 수평선을 무릎 아래 두고
개를 끌고 가는 노인의
구부정한 실루엣은
전생의 주인을 모시고 가는
충직한 종과 같이 공손하다
다음 생에서 개는 주인이 되고
노인은 개가 되어
서로의 실루엣을 끌고
미래의 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먼 바다에서 달려 온 파도가 마지막
어둠의 엉덩이를
해안선에서 철썩 후려쳐 되돌려 보낸 다음
새벽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끼룩거리는
모래사장에서 개와 함께
뛰어 노는 아이들도 한 생애를 돌아
언젠가 다시 저물녘
수평선을 그의 무릎 아래 두고
구부정한 실루엣처럼
개를 끌고 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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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사들은 걸인에게도 나를 대하듯 하라고 한다. 즉 미물에게도 전생과 내생의 자신을 대하듯 해야한다는 것은, 역할이나 지은 업이, 곧 돌고 돌아온다는 윤회설을 이야기한다. 돌아가는 시간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역할과 시간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과업의 세세한 기록은 스스로의 데이터에 남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모래사장에서 뛰노는 저 어린애가 다시 개를 끌고 가는 노인이 되고 다시 개가 노인을 끌고 간다. 그렇게 인류의 릴레이는 끊없이, 시간의 영속성을 지닌 채 무한 상영으로 반복된다.
최동호 시인은 최동호 시인은 '중앙일보'신춘문예(1976)으로 평론 등단. 시집으로 '황사바람''아침책상''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현대시의 정신사''시 읽기의 즐거움''인터넷 시대의 시 창작론'등이 있다.
<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December 15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