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은검초銀劍草
장충길(1951~)
조상의 땅* 중에서 가장 신성한 할레아칼라**
분화구 오름 목 차디찬 암석들 사이
미끄러지듯 화산재를 딛고 서 있는 외계인,
해발 3천 미터 극한 속에서 한 방울 이슬로 목을 축이고
온몸에 형형한 은빛이 스밀 때까지 오직 돌아갈 별을 생각한다.
끈적끈적한 것들은 다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꽃과 나무와 풀은 물댄 동산의 말처럼 왕성하고 요염하지.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아랫것은 더럽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오염원이지.
오를수록 메마르고 오염을 허락하지 않는 태양의 집,
구름 위의 황막한 영토,
태우고 태워 남은 재 또는 광물질들만 모여 사는
요요寥寥한 멸절의 옥獄,
그곳이 은검초銀劍草 서식처인 걸.
아래로부터 온 너희 젖은 손으로 그를 만지지 마라.
언젠가 죽을 너희를 위해 그가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오직 한 번 그의 별에 보내는 불꽃신호,
대형원통 꽃을 피우고,
자진自盡하리라.
은빛 칼은 처음부터 예비한 것이다.
*)하와이, 하와이는 조상의 땅이라는 뜻.
**)태양의 집이라는 뜻. 하와이 마우이 섬에 위치한 높이 3,055미터 세계 최대의 휴화산, 거대한 분화구로 유명함. 미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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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 마음을 빼앗겨 보라. 여기, 신비로운 자태의 은검초가 형형한 빛을 내뿜고 있다. 그는 하와이 할레아칼라 분화구 화산재위에 뿌리를 내리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정신적 아름다움의 칼날을 번뜩이고 있다. 지상과 결코 섞이지 않는 그 순결한 고매함이 강철처럼 의연하게 빛난다. "오염을 허락하지 않는 태양의 집/구름위의 황막한 영토"위에 오직 피여있는 은검초, 순교자와도 같은 도도함을, 요요한 멸절의 옥처럼 빛을 발하는 이 은검초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습에, 넋을 잃어보라.
장충길 시인은 경남 밀양 출생.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KBS 선임 프로듀서로 재직중이며,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July. 20.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