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단군의 아기
박건호(1949~)
달빛이 차가운 태평양 상공
엔진소리만 요란한 미국행 비행기에서
양부모를 찾아가는 단군의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은 마지막 모국어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나의 가슴은 찢어지는데
무표정한 이방의 승객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안절부절 못하는 파란 눈의 아가씨야
아기를 달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울게 내버려 두라
네가 물려주는 미국산 우유로는
한 방울의 눈물도 씻어낼 수 없느니
지금도 방황하고 있을 어느 미혼모와
비정한 사나이를 향하여
차라리 저주의 기도를 올려라
그리고 함께 울어라
한반도의 아픔이 흩어지는 태평양 상공
날짜 변경선을 지날 무렵
우리의 사랑스런 단군의 아기가
울다 지친 얼굴로 잠이 든다
그것은 체념의 시작
파란 눈의 아가씨는
비로소 안도의 숨결을 몰아쉬며
시계바늘을 돌리고
승객들은 다시 눈을 감는데
나의 가슴은 갈갈이 찢겨진 채
밤바다를 향해 곤두박질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이름을 잊어버린 아이야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느냐
조국이 멀리 사라져 가는 태평양 상공에서
너를 버린 엄마를 생각하며
배냇짓하는 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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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우리 모두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뇌우처럼 몰아친다. 한 민족 한 핏줄의 자손인 우리 '단군의 아기'가 미국으로 낯선 양부모를 찾아 입양되는 눈물겹고도 안타까운 현실의 모습이다. 조국을 뒤로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입양아의 울음이야말로 "그것은 마지막 모국어"라고 시인은 갈파한다. "나의 가슴은 갈갈이 찢겨진 채, 밤바다를 향해 곤두박질한다"라는 싯구처럼 애처롭고 따스한 시인의 눈길이, 우리에게 통렬한 각성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입양아의 현실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역시 누구인 것이며, 이 입양아 또한, 과연 누구인 것인가. 라고 준열하게 묻고 있다. 이시는 한 뿌리의 혈통을 가진 우리 단군의 자손으로써, 운명공동체적 책임의식과 뼈아픈 인식으로 자성케하는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우리를 흠뻑 몰아넣는다.
박건호 시인은 강원도 원주 출생. 시인이며 작사가. 시집으로<'영원의 디딤돌><타다가 남은 것들><나비전설><딸랑딸랑 나귀의 방울소리 위에> <그리운 것은 오래 전에 떠났다>등 다수 시집이 있으며, 가사집으로 '모닥불''철새의 편지'및 다수, 투병기 및 에세이집으로 <너와 함께 기뻐하리라><나는 허수아비>등이 있다. 'KBS 올해의 최고 인기상''KBS 가요대상''카톨릭 가요대상''ABU가요제그랑프리''국무총리상''한국방송협회 아름다운 노래 대상'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 Apr.13.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