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시가 있는 세상>
오렌지
김상미(1957~ )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
그러나 두려워 마라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여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남아 있는 법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는 내 사랑의 이빨로
네 속에 남은 한 줌의 삶
흔쾌히 베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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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시들어 가는 오렌지를 먹어본 적 있는가.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의 바다에 아픈 지느러미를 흔들며 표류해본 자는 안다. 눈물겨운 그 향기와 쓸쓸한 사랑의 섬광을, 코끝이 찡하게 시들어 가는 애잔한 것마저도 강렬한 안간힘의 타오름으로 빛난다고 한다. 또한 시들어도 삶의 흔적들이 어디로 휘발하는 것이 아님을 이 시는 묘파한다. 비록 상큼한 향기는 바람에 남김없이 날려갈지라도 삶이 우리 앞에 저토록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무늬로 영구한 흔적들을 남긴다는 것을 .
김상미 시인은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여름호로 등단. 시집으로[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등이 있으며,<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December 22. 2006.